역사 인물의 이야기

조선의 빌 게이츠? 그녀는 전 재산을 기부했다 – 김만덕

디오라 2025. 7. 29. 17:12

1. 김만덕은 누구인가?

1-1. 조선의 상업을 움직인 여성

(1) 제주 출신 여성으로 상업에 입문한 이유

김만덕은 제주 출신의 여성으로, 조선 후기 남성 중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상업 활동을 펼친 인물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일찍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생존을 위해 기녀가 되었으나 이내 신분을 회복하고 객주로 전업하였습니다. 그녀는 물류 유통을 장악하며 제주와 한양 간의 교역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2)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상업 성공 비결

당시 여성은 법적으로도 경제 활동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김만덕은 상거래의 신용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정직과 투명성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이런 경영 방식은 상인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제주 경제의 중심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조선 시대 복식을 입은 여성 김만덕이 기근에 처한 백성들에게 쌀 자루를 나눠주는 장면을 따뜻한 분위기의 일러스트로 표현한 썸네일

2. 조선을 살린 기부, 1795년의 감동

2-1. 제주도 기근의 실상

(1) 기근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

1795년, 제주에는 혹독한 흉작이 이어졌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죽었고, 곡물은 관리들에 의해 축적되어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 김만덕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수천 석의 쌀을 조달하고,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2) 관보다 빠르게 움직인 한 여성

그녀의 대응은 국가나 관료보다도 빠르고 효과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의 조선 관청은 대응이 늦어 피해가 컸지만, 김만덕의 선제적 조치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고, 제주 전역에 그녀의 이름이 전해졌습니다.

 

 

3. 정조의 반응과 조정의 평가

3-1. 조선의 시스템이 그녀를 받아들이다

(1) 금난전권 허용이라는 파격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직접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 특별히 포상을 내렸습니다. 조선시대 내상이나 공인에게만 부여되던 '금난전권'을 그녀에게 내려 서울에서도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허용한 것입니다.

(2) 정조가 보낸 특별한 상장

정조는 김만덕의 행적을 조선 최고 선행으로 꼽으며, 그녀를 모든 백성에게 귀감으로 삼으라 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여성 상인의 선행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민 영웅으로서의 첫 사례였습니다.

 

4. 기록 속 김만덕이 잊힌 이유

4-1. 왜 그녀는 역사에서 묻혔는가?

(1) 여성이라서

조선은 유교적 가부장 체제를 기반으로 하였기에, 여성의 공적 활동을 제도적으로 기록하거나 조명하지 않았습니다. 김만덕처럼 위대한 인물이었음에도 그녀의 이름은 사관들의 기록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2) 상인이라서

또한 상인은 사농공상의 마지막 계층으로 취급받아 공식 역사에서 소외되었습니다. 지배층은 상인의 업적을 역사적으로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김만덕은 두 겹의 차별을 겪으며 서서히 잊혀졌던 것입니다.

김만덕의 상업 활동은 단순한 이윤 추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물류 흐름을 통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했습니다. 제주도는 육지와의 왕래가 어려운 고립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생필품 공급의 중간 연결고리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김만덕은 선박을 이용해 쌀과 생필품을 대량으로 유통시켰고, 그 과정에서 정직한 가격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서민 경제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795년 기근 당시, 그녀가 쌀을 풀기 전과 후의 상황은 극명히 달랐습니다. 수많은 가구가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피폐해진 반면, 그녀의 기부 이후에는 최소한의 식량 확보가 가능해져 생존율이 급상승했습니다. 김만덕은 곡물만 나눈 것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력도 나누었습니다. 당시 제주 관아에서도 이런 그녀의 활동을 두고 “정치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민간의 손길”이라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정조는 김만덕에게 한양으로 올라오라고 직접 명하였고, 그녀는 국왕과의 하례 자리에서도 담담하게 민초들의 생존을 먼저 언급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정조는 그녀의 기부 정신을 “백성을 부모처럼 여긴 여인”이라 극찬했으며, 그녀의 정신을 본받으라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조선에서 여성, 그것도 상인 출신 인물이 국왕에게 직접 인정을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이는 그만큼 그녀의 행위가 국가를 움직였다는 증거였습니다.

김만덕은 한양에서 특혜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이를 마다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가 현지 백성과 함께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재산을 증식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재산이 지역 사회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적 기업가 혹은 시민운동가에 해당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 리더’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김만덕의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미담의 주인공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코로나19,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눔과 책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5. 마무리 –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

김만덕은 단지 조선 후기의 여성 상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자신의 재산과 노력으로 구한 진정한 지도자였습니다. 오늘날 김만덕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일화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책임의 상징으로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녀를 기억함으로써, 이 시대에도 필요한 인간적 가치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